‘....그러나 더러는 “새 포도주에 취했군“ 하며 비웃었다.’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자기만의 완고함이 그래서 무섭다. 자기 확신은 독재며 히틀러와 같은 인간을 만들기도 한다.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이 얼마나 큰 은총인가를... 믿음의 시작은 내 마음안의 완고함이나 고정관념,틀,편견,선입견과 같은 부정적인 마음의 옷을 벗어버림으로 온전히 자유로울 때 나에게 들어 오는 에너지와 비슷한 것 같다. 내가 준비가 되어져 있어야 가능하다.
‘하느님께서 ....만물이 복원될 때까지...’
역사는 순리따라 흐름일까? 사람에 노력따라 만들어 지는 걸까? 합동작전일 것이다.
유대교만큼 하느님을 잘모시는 종교도 드물다. 단지 하느님의 시간, 때가 차지 않았기에 유대인들에게는 단한번의 ‘유대교 회개’가 이루어 지는 날이 아직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날은 세상의 새로운 시작이 아닐까? 단한번의 큰 회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하느님이 오신 그리스도를 못 알아 봄, 알아보고도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더 소중하여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대죄 말이다. 이것도 성경에 기록되어져 있다.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우선 하느님을 전하기 위해서 라고. 하느님은 유대인 만의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 그들이 가진 선민의식을 깨어버려야 교만으로부터 벗어 날 것이다. 가장 큰 죄가 교만에서 오는 것이다.
‘하나니아스....주님의 영을 시험하는 것이오‘
양심은 하느님과 근접해 보였다. 누가 보거나 안보거나 알거나 말거나 뭐가 중할까? 내 양심이 알고 하느님이 아시는데...마음이 작아서 감사도 작은 것이 솔직하다.
‘베드로...그의 그림자만이라도 누군가에게 드리워지기를 바랐다.’
베드로의 이적과 표징들...가장 많은 신자들이 생겨나고 있었을 시기 같다.
‘사도들이 박해를 받다.’
‘대사제가 ...시기심에 가득차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
사두가이파들과 함께 대사제의 박해가 없었다면 역시나 하느님은 유대인들의 하느님으로 될뻔 하지 않았을까?
고통, 박해... 이 시간이 은총의 시간이 된다. 사도들이 흩어져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할 수 있었다.
'다네이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네이 성경읽기) 사도행전.3 (0) | 2024.07.27 |
---|---|
(다네이 성경읽기) 사도행전.2 (0) | 2024.07.27 |
(다네이 성경읽기) 요한복음.2 (0) | 2024.07.20 |
(다네이 성경읽기) 요한복음.1 (0) | 2024.07.19 |
(다네이 성경읽기) 루카복음.3 (0) | 2024.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