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네이 글방

(다네이 성경읽기) 사도행전.2

angella의 노래 2024. 7. 27. 10:28

10,13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주님 절대 안됩니다....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마라.....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사람을 속되다거나 더럽다고 하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ㅡ인간에 대한 평등주의와 세상 것의 소중함은 하늘로 부터 온 것이기에 모두 깨끗하다. 이방인을 수용하는 베드로의 태도다.

13,39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안에서 모든 죄를 벗어나 의롭게 됩니다
13,47 땅끝까지 구원을 가져다 주도록 내가 너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세웠다.
ㅡ온 인류에게 누구라도 평등하개 구원이 시작되어져 간다.

13,51 ...그러나 유다인들은...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박해하게 만들고 ...발의 먼지를 털어버리고 나서....
ㅡ마음안에 있던 상처나 짐을 놓아 버리는 행위다. 확실하게 작은 오해가 생기지 않게 먼저 불식시키려는 것이다. 발의 먼지를 털고 떠나듯이 관계안에서도 오해가 들어 온다면 확실하게 끊어 낼 수 있는 것이 주체성이다.
아닌 것은 분명 아니다. 관계속에 한발을 넣고 빼기 하기 보다는 확실하게 선을 긋고 내가 하고자 하는 행동을 하겠다. 의 선언도 보인다.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선포가 시작된 것이다.

14,13 ...황소와 몇마리의 화환을...제물을 버치려고 하였다. 바르나바와 바오로 두사도는 ...자기들의 옷을 찢고... 여러분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할 따름 입니다.
ㅡ겸손한 이들의 복음전파다.
새로운 세상이 열릴 때는 몇사람의 선지자가 인도하는 변화에 눈여겨 봐야 할 듯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동물을 바치는 행위가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성전정화 이후론 예수님이 어린양으로 대속 하심으로 동물의 희생을 막는데 일조하였다. 그리스도의 단한번의 대속으로 매년 희생재물이던(아브라함 시절엔 아들까지도 속죄양이 었다) 근절이 이루어 진 것이다. 시대의 흐름도 이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세상이 지금 대변화가 온다. 이 흐름에 잠시 눈을감고 침묵하면서 느끼고 알아차려야 한다. 흐름에 빠져들기 보다는 그 흐름의 방향을 잘 보고 이끌수 있는 훈련도 있어야 휘둘리지 않는 이시대를 살아갈 수 있다.

17, 22 바오로는 아레오파고스 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대단한 종교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23 내가 돌아다니며 여러분의 예배소들을 살펴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겨진 제단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
24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은 하늘과 땅의 주님으로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살지 않으십니다.
25 또 무엇이 부족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도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모든 이에게 생명과 숨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26 그분께서는 또 한 사람에게서 온 인류를 만드시어 온 땅 위에 살게 하시고, 일정한 절기와 거주지의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27 이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게 하려는 것입니다. 더듬거리다가 그분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28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도 그분의 자녀다.' 하고 말하였듯이,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29 이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므로, 인간의 예술과 상상으로 빚어 만든 금상이나 은상이나 석상을 신과 같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30 하느님께서 무지의 시대에는 그냥 보아 넘겨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 있든 모두 회개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명령하십니다.
31 그분께서 당신이 정하신 한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의롭게 심판하실 날을 지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리시어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증명해 주셨습니다.”
ㅡ그리스 여행중에 아테내에서 위의 말씀으로 설교하던 바오로의 언덕에 올라가 보았다. 바로 파르테논 신전이 좌편으로 우뚝 보이는 길 건너편의 언덕이었다. 그냥 뭔지모르게 올라오는 벅찬 마음으로 다시 바오로 사도의 설교를 되뇌어 보았다. 그리스인들의 알고자 하는 열망은 대단하다. 또한 토론 문화는 역사적으로 훌륭한 소크라테스, 풀라톤...헬레니즘이 있지 않는가. 그 자리에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써 놓은 현판이 있다. 바오로 사도는 그들이 인정한 그 부족함으로 설교를 시작 한 것이다. 그의 설교로 몇사람만이라도 마음에 변화거나 넓어지는 자유를 맛보았다면 그렇게 세상이 맑아지는 것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