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셨다.’
갈릴레이 호수에서 쳐다보면 완만한 언덕이 있다. 신기하게도 바람은 호수에서 언덕쪽을 향해 불어 오는 때가 있다. 확성기의 역할을 한다. 예수님의 말씀이 모든 군중에게 들릴 수 있는 장소였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주십시요. 저는 죄많은 사람입니다.‘
베드로의 겸손한 모습이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했다.’
믿음은 어떤 것일까? 간절함이 있어서 오는 걸까? 주시는 걸까?
나에게도 믿음이 느껴진 순간이 있었다. 성경을 묵상하면서 공부할 때였다. 어느 순간에 온 천지가 빛으로 바뀌는 것처럼, 부정적 마인드가 긍정 마인드로 바뀌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르르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 졌다. 믿어야지. 믿어야지. 하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마다 환경이 다른 것 처럼 믿음이 생겨지는 그 순간도 다를 것이다. 다만 내가 하느님의 사랑이고 사랑을 깨닫는 순간에 믿음으로 확신이 생겼다. 그렇게 온 믿음 후에는 의심이나 바뀌지 않았다. 공기를 마시듯이 보이지 않지만 편안한 무엇... 마음에 평화가 있다. 평화가 깨질 때도 고통이 와도 어떤 어려움이 온다해도 주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주님께 오히려 내어맡기면서 질문을 하듯이..내 삶에 최선을 해 나갔다. 주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셨더라도 언젠가는 모두가 다 죽는다. 내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 하더라도 내 믿음만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공평하고 무한정한 사랑이신 하느님 안에 아주 작은 믿음일 뿐이다. 그냥 ‘믿습니다. 하고 다 놓아 버려라.’ 믿음이 환하게 내 안 가득 들어 차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믿는 이와 주님과의 관계는 공평하게 사랑을 주시는 세상 사람들 속에서도 소통이 되는 관계인 것 같다. 서로의 마음을 안다. 놓아 방목하는 사랑이다. 믿을 수 있으니까.
‘철부지에게 드러나 보이시니’
세상적인 지혜는 사리에 밝다. 그래서 사욕도 커진다.
주님의 말씀조차도 악용하여 자신의 사욕을 채워간다. 그런 이들에게 성경말씀은 해악이다. 주님을 이용하고 성령을 모독한다. 신성모독보다 더한 성령 모독이다. 주님은 다 아시니 철부지들에게 세상 것 보다 귀한 하늘의 지혜를 보여주신다. 마음이 순수하니 보인다.
‘잃었던 은돈을 찾았습니다.’
잃어버린 어린 양과 잃었다가 찾은 은돈은 회개한 사람을 일컫는다. 주님께서는 의인 99명은 스스로 잘 살아 온 사람들이니 앞으로 가는데 믿음이 있으시다. 하지민 무언가 부족한 이(약자,소외자,병자,무능한 이,나약한 이...)은 스스로 일어 날 힘이 부족하기에 주님의 손길이 필요하다. 주님은 그들에게 더 마음이 쓰이신다. 그들이 회개와 같이 좋아졌을 때 잃어 버렸던 어린 양을 찾았을 때의 심정처럼 기뻐하신다.
‘큰아들’
이미 은총을 다 받은 아들이다.
‘약은 집사의 비유’
루카 16장은 돈(재물)에 대한 비유다. 세상의 재물을 어떻게 모으고 써야 하는가 생각케 한다. 올바르게 모아진 돈을 세상적인 시각으로 볼 때 제대로 쓰임이 중요하다. 한없이 모아놓고 으시대고 기뻐만 하는 재물은 재물로서 가치를 이미 상실했다. 재물로서의 가치는 꼭 필요할 때 쓰일 수 있고, 꼭 필요한 이에게 나눔이 일어 날 때 빛을 발한다. 현대에 와서 재물은 노후까지를 생각해서 잘 분배해서 모으고 잘 써야 겠지만 함께 나눔에도 인색하진 말아야 할 것이다.
‘남을 죄짓게 하지마라.’
나의 방심으로 남이 나쁜 마음을 먹게 됬을 때엔 나의 책임도 그 죄안에 있음을 잊지 말자.
‘형제가 죄를 지으면 용서하라.’
나의 용서와 하늘의 용서는 다를수 있다. 나와 형제간에 다툼이 있었을 때 내가 부족함도 함께 있으니 용서할 수 있다. 다만 화해는 쉽지 않다. 용서는 혼자서 할수 있지만 화해는 상대방도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너그러울 때 일어난다. 이때 서로 너그러움이 맞아서 화해도 할수있기 때문이다. 하늘의 용서는 그 사람의 내면의 일생을 본다. 그렇기에 용서는 하늘의 몫이다. 하늘에 맡겨야 할 몫이었다.
‘해야 할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종이 주인의 시중을 들고 난 후에 어떻게 하는가? 내 시중을 받았으니 감사 인사를 받으려 하는가? 주님의 종인 사람(나) 역시 주님을 시중 들면서 오히려 내 할일을 하니,기쁘게 받아들이고 최선을 해야 할 책임이다. 책임은 의무와 도리가 따른다. 권리를 주장해선 겸손하지 않다.
성경을 읽고 묵상해 가면서 신비로운 마음변화를 준 이
책을 보면서 어떻게 안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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