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네이 글방

(다네이 성경읽기) 루카복음.1

angella의 노래 2024. 7. 18. 17:16

‘믿지 않았으니’
믿음으로 오는 선물은 기적과 같다.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 선물로 온다. 반대로 그 믿음에 순종하지 않은 댓가가 있다. 즈카리아에게도 세례자 요한이 태어날  때 까지 말을 못하게 됬다. 경솔함에 대한 댓가였을 수도 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니...’
그 말에 마리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순명하는 마리아는 곰곰히 생각하며 묻고 따르는 믿음의 신앙이다.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세례자 요한이 물로 세례를 줄 명분이 즈카리아의 기도속에 나타나 있었다. 성령을 받아서 쓴 기도문이다.

‘정신도 굳세어 졌다.... 광야에서 살았다.’
세례자 요한의 어린시절과 젊은시절의 삶이다. 세상에 나오기 전의 준비하는 삶이 남다름이다.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영특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자식을 보면 흔히 내꺼? 내 자식이라는 집착에 빠진다. 그만큼 자랑스러운 자식이다.
잊고 소유욕에 빠진 부모에게 어린 예수의 상기 시키는 이 말은 하느님의 아들로 온 예수에 대해 부모도 관계 정립이 되가고 있었을 사건이다. 우리에게도 자식은 성장하며 끊어내야 할 관계 정립들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결국엔 영원한 이별까지도.

‘하느님은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들수 있다.’
세례자 요한의 이 말과 예수님께서 성전을 허물고 삼일만에 지을 수 있다는 말이 일맥상통하게 느껴졌다. 예수님이 하느님이신 삼위일체이다.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질 것이다.’
성경에서 세례자 요한이 말한 쭉정이는 겉은 알곡이 찬 껍질과 같아 보이지만 속이 빈 거짓 신자. 엉터리 신자들을 일컫는다. 알곡과 쭉정이의 차이는 뭘까?
알곡 같은 신자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리스도의 자녀다운 성령의 열매가 맺혀지는 것. 그러나 쭉정이는 시간이 흘러도 속이 차지 않고 빈껍질이다. 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성품이 없다. 변화가 안 이루어진 자기 고집이거나 이단으로 잘못되게 따르는 척만 한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도 없고 감사함도 없고 깨달음도 없고 그저 보이는 종교생활만 하는 쭉정이다.

’너는 요셉의 아들 아니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은 무섭기까지 하다. 한번 ‘ㅇㅇ 이다.’ 라고 스스로 머릿속과 마음안에 심어 놓고는 그것이 법처럼 또는 진리처럼 따른다. 또 세상적인 삶에서 신앙 생활을 시작했다면 그에 맞게 영적으로 열리고 따라야 변화가 온다. 이런 변화는 변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깨어나는 변화인 것이다. 영적인 눈과 마음으로 열리는 변화다. 주님께서는 나자렛 사람들의 편견으로 보물을 보지 못함을 애석해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