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네이 글방

(다네이 성경읽기) 마르코 복음.4

angella의 노래 2024. 7. 18. 12:17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가끔은 말의 와전을 본다. 말뜻을 잘못 이해 하고는 오히려 내가 한 말인 양 자신이 판단하고 말하는 경우다. 같은 언어로 대화를 해도 사람의 마음안에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무서운 결과도 가져올 수 있다.

‘수석 사제들이 시기하여 자기에게 넘겼음을 알았던 것이다.’
서로 미루는 행위가 보인다. 책임회피다. 어디에서나 용기있게 나서기 어렵다. 비겁함이다.

’유다인들의 임금님‘
비웃음, 조롱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들의 마음안에는 군중심리가 있다. 혼자선 자신 없음, 용기부족 하다가도 우루루 몰려가선 없던 용기가 나온다. 이때에 인간의 큰 실수판단, 죄를 보게 된다. 언제든 침착히 절제와 분별이다.

‘몰약을 탄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통에 진통 효과가 있고, 정신에 안정되 있을 몰약을 거절하시면서 가장 처절히 모든 아픔들을 스스로의 몸과 마음과 영혼에 다 담으신 것이다.
    
’겉옷을 나누어 가졌는데 누가 무엇을 차지할지....‘
옷에 대해 자세히 성경은 말하고 있다. 당시 옷이 귀하기도 했지만 의미 있는 사람의 옷을 가짐이 무슨 부적 같은 것이 였을까? 아니면 더 깊고 높은 뜻이 있을까? 동서남북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이 퍼진다는 의미를 말하기도 한다.

하느님의 버리심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는 이해조차도 어려운 우리의 사랑 때문에 고통을 받으러 오십니다. 그분은 닫힌 하늘을 보고, 삶의 쓰라린 경계, 실존의 좌절, 모든 확신의 붕괴를 경험합니다. “이유 중의 이유”, “하느님, 당신이 왜요?”라고 울부짖습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
‘버리심‘은 세상으로 부터 가장 밑바닥으로 낙오가 된 마음이다. 비참하고 외롭고 소외되고 아픈 자는 누구나 그 마음을 말하고 주님께 대들기도 한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시며 돌아 가셨다. 그 버려진 마음 가진 이들의 죄를 안고 가신 것이다. 희망의 길을 열어 놓으심이다. 그 순간에도 기도하시고 하느님께 의탁하는 모습이 있다. 내가 버림 받았다는 생각이 들고 외롭더라도 주님을 놓치지 않고 기도하고 의탁한다면 주님은 반드시 길을 열어 희망을 주신다. 하느님의 사랑 방식이다.

‘참으로 이사람은 하느님의 아들이셨다.’
수많은 군중들 중에 유일하게 하느님과 예수님의 영적 소통을 알아 본 이 같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셨다.’
예수님은 12제자들이 있었지만 처음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신 의미가 있을까? 마음을 보는 관계에선 마음으로 표현을 하든 못하든 큰마음을 알아 볼수 있다. 사랑의 마음이다. 누구보다도 마리아 막달레나는 주님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다. 그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닮아 있었고 마음으로 나누셨을 것이다. 어떠하더래도 신의를 가지고 사랑한 관계가 와 닿는다.

’예수님께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부활 후의 모습이 생전의 모습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영적으로 깨어 있다면 서로가 영의 눈(마음)으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길을 가던 다른 두제자는 예수님을 알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후 알아차린다. 하지만 11명 제자들이 믿지 않았다.

‘완고함을 꾸짖으셨다.’
예수님 부활을 전해도 각자 마음이 얼마나 완고 한지 믿지 않았다. 부끄러웠을 것이다. 11명의 제자 누구도 마리아 막달레나와 길을 가던 다른제자 둘의 말을 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