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네이 글방

9<아침에 피아노를 >읽은 다음 함께 생각해 볼 것들

angella의 노래 2024. 3. 6. 12:02

* 하루하루 들리는 소리 중 마음까지 전달되는 소리는 어떤 게 있는가?
ㅡ고요한 숲에서 소리없음. 무음안에서 느껴지는 새울음이나 바람소리... 자연에서 들리는 소리가 내마음의 지금상태를 비추어 주듯이 받아들여 진다.

*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생애의 지도를 그려보자.
ㅡ많은 생각들로 마음속에 파고가 있어도 크게 본다면 감사와 축복이 많다. 생애의 지도는 두번의 병(30대,60대)이 준 3여년씩의 방황시간, 그 안에서 바른길로 인도하심으로 더 성장해진 나의 영성이다.

* 당신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음악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ㅡ목소리보다는 악기소리(요즘은 기타소리가 좋다)보다는 자연의 소리같은 음에 빠져있다. 물소리. 바람소리.... 산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생명의 근원소리이다. 새의 울음소리 보다는 경쾌한 웃음으로 들리니 지금 난 기쁘게 살아있음이다. 소리, 음에 심취하다보면 생동하여 지루하지가 않다. 나에게 음악은 그때의 기분상태이다.

(아침의 피아노172)
아침산책. 전선줄 위에 새들이 음표처럼 앉아있다. 비 갠 빈 하늘이 푸른 악보 같다. 마음의 바닥을 내려다 보면 거기에도 전선들이 그어져 있다. 그 위에 새들이 아니라 눈물들이 매달려 있다. 혹은 울음도 연주가 아닐까? 지금 내가 정말 울면 그 눈물들이 새처럼 음표가 되지 않을까. 추락하는 눈물들이 어떤 노래가 되지 않을까. 그 어떤 비상의 노래.
ㅡ마지막 까지도 생명에 놓지 않고 희망적인 마음이 읽힌다.

*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서 본 일이 있는가?
ㅡ죽음의 경계선?? 잘모른다. 언제 죽을진 모르기에. 다만 아주 힘이 들때 이렇다가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늘 죽음을 경계하기보다는 인지는 하려 한다. 그때그때 따라서 죽음의 느낌이 다르다.

* 잘 죽는다는 건 어떤 것인가?
ㅡ조용히 적당히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

* 죽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ㅡ죽고난 후, 남겨놓은 일상의 것(일기,내가 남긴 물건)이 말해준다. 그냥 있는대로 살다가 맡긴다. 남아있는 사람에게.

(아침의 피아노.177)
....늘 그는 자기를 객관화 할 줄 안다. 그래서 늘 자기에게서 머물고 자기를 지킨다. 나는 늘 나를 주관화 한다. 그래서 늘 내게 머물지 못하고 나를 지키지 못한다. 나는 분명 그보다 더 많이 공부했지만 스승은 내가 아니라 오히려 그다. 부끄러운 일이다.
ㅡ생활력으로 몸으로 삶을 경험하고 견디어 가는 사람과는 경쟁 자체가 스타트선도 도달선도 다르다. 누구의 인생이 맞고 틀리고 보다는 나와 다름에 숭고함으로 존중하게 한다. 제주도에 강양이 그렇다. 만나거나 전화하면 내가 늘 혼이 난 기분...

* 어떤 자리(공간)에서 죽음을 맞고 싶은가?
ㅡ잠자리에서 자다가..

* 죽는다는 암선고를 받았다면 마지막 준비를 어떻게 하고 싶은가?
ㅡ살던대로 살다 가겠지. 다만 도움받는 시간이 긴 것은 싫다.

*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심경을 글로 쓰고 싶은가?
ㅡ쓸 수 있는 정도라면 지금 블로그 쓰듯이 쓸 것 같다.

* 임종할 때 누가 곁에 있다면 좋겠는가?
ㅡ가족.

*"남은 생이 얼마인지 문제가 아니다. 지금 당장 ,라잇나우,내가 어떤지를 알 아차리면 된다."
-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과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한 철학자의 강인한 의지가 엿보인다. 이 강철같은 의지는 어디서 온 것일까?
ㅡ큰 우주적 사랑을 알아차림.

* 나에게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 갑자기 일어났을 때,
- 내 마음속에 무엇이 일어나게 될 것 같은가?
ㅡ차분할 수 없을까봐....

- 나는 이 일을 어떻게 대하게 될까?
ㅡ본성품이 보일 듯.

* 19번에 이런 내용이 있다:
"돌보지 않았던 몸이 깊은 병을 얻은 지금, 평생을 돌아보면 만들고 쌓아온 것 들이 모두 정신적인 것들, 뿐이다. 그것들이 이제 시험대에 올랐다. 그것들이 무너지는 나의 육신을 지켜내고 병 앞에서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이제 나의 정신적인 것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자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나는 죽어가면서 무엇을 증명하고 싶은가?
ㅡ사랑을 진짜 알았고 했을까?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묵시 21, 4)
성경은 새날의 기쁨을 찬양하는 책이다. 그 놀라운 축복의 새날이란 어떤 사건의 날인가. 그건 기억이 아니라 망각의 사건이다. 망각의 셀러브레이션. 그것이 성경을 관통하는 주제다. 『아침의 피아노』 저자는 축복의 새날을 기억이 아니라 망각이라고 말한다

-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맞이하게 될 '나의 죽음'은 어떤 사건으로 있는가?.
ㅡ정신,마음, 머릿속을 비울 때 새로움이 들어 온다. 우물에 물을 비워야(망각)  새물이 차오르는 이치처럼. 다 기억을 할 수도 없는 것을 글로 남긴다는 것은 나와 대화하면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다. 또한 나의 몸이 새로와 지는 변화의 순간순간이다. 그 변화가 유익하다면 긍정이고 사랑으로 가는 방향이라면 인생길에 이보다 더한 축복은 없을 둣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