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쭈그리고 앉아서 구걸하는 여인을 만났다. 자세히 보니 나이는 많지 않아 보였으며 옆에 5-6살 정도 자그마한 어린 소녀를 손으로 가르치면서 깡통을 흔들어 대고 있었다. 예쁘장한 얼굴이지만 거무티티한 햇빛 그으름과 잿빛 허름한 옷을 걸치고 베드로 돌바닥 위였다. 무엇보다도 간절하게 슬픈 표정을 담아서 돈을 바라고 있었다.
10여년 전. 러시아 어느 동방교회 정문에서 만났던 집시여인이 떠올랐다. 나는 여행중에 늘 준비해 둔 1달러를 작은 철밥통에 넣었다. 그러자마자 그녀의 얼굴은 오무라진 꽃봉우리가 활짝 피어나는 듯, 환하게 미소 띄우면서 성호를 그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태리어 였을 것이다. 다만 입술만 움직이니 아주 조용히 느껴졌다. 한번이 아니고 마음을 담아 일어서서 하고 또 하고... 마음 같아선 100달러 지폐라도 넣어주고 싶을 만큼 진심으로 와 닿았다. 이 여인의 기도만큼 진실로 나를 위해서 기도해준 이가 얼마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함께 그 미소에 감사를 담아 눈빛을 마주 하면서 성호를 여러번 그었다. 그녀에게도 행운이 왔으면 하는 심정을 전달했다. 집시 여인들은 어느나라에서나 기도하는 모습이 닮아 있었다. 돌아오면서도 그 여인이 떠올랐다. 한번 있었던 경험도 아닌데.. 왜 그럴까? 하루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와서 묵상이 되어졌다.
다시 30여년만에 온 이탈리아 성지순례엔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다. 기력이 점차 약해지고 건강회복도 더디다 보니 이 여행이 마지막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여행을 잘 끝내고 집에 돌아가면 용기가 생겨날 것 같았다. 그 용기로 버텨낼 힘을 얻을 것이다. 이번 여행의 모토도 ‘몸과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길. 세상에 평화가 있길. 나도 가족도 세상의 모두’ 에 대한 기도였다.
단 돈 1달러를 건냈을 뿐인데. 그 기뻐하는 모습에서 예수님이 떠올랐다. 얼마의 돈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을 읽고 보시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애로 왔다. 여인의 모습안에서 오버랩이나 된 듯이 예수님이 느껴졌다. 마태복음의 귀절이다.
(18,10) ‘작은 이들을 업신여기지 마라.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있다.’
하늘나라에서는 누구나 공평하고 동등한 대우를 주고 받고 있는 수호천사들이 있다. 그곳에선 이 여인과 난 다를 것이 없다.
(25,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25,4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의 마음을 보시려고 계획이나 하시듯이 이 여인이 내 앞에 있었을까? 오히려 나에게 나눔의 기회를 준 그 여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할까? 어디에서 천사를 만날지 몰라서 유대인들은 도움을 청하는 나그네에게 환대한다고 한다. 나는 한번 더 그녀를 뒤돌아 보면서 미소와 바이바이~ 손짓을 하면서 그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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