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고 심베르크- (1873-1917) 핀란드 상징주의 화가.
이 그림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상처입은 한 영혼을 순수한 두 소년이 이고지고 간다. 묵묵히 걸어가는 앞 소년의 체념과 뒷소년의 증오의 눈빛에서 한가닥 실낙같은 희망을 남겨놓았다. 인류가 세상에 들어 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차별은 어디에나 있었고, 상처받은 영혼이 언제나 있다. 권력,힘으로. 탐욕,돈으로. 이기심으로. 무자비한 인간성으로 부터... 이 시대는 신앙마저도 상실해 가고 있다. 종교의 순수성도 사라져간다. 니체의 '신의 죽음'을 시각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상처 입은 천사는 종교적 확신의 쇠퇴를 상징하고, 그녀를 업고 있는 소년들은 신의 권위가 약화된 세상에서 인류가 짊어진 짐을 대신하고 있을까? 신에 대한 “믿음이 우리를 지탱해 주지만, 때로는 우리가 믿음을 짊어져야 할 때도 있다"는 메시지와, 뒤에 있는 소년이 "하지만 언제까지 그 믿음을 짊어져야 하나요?"라고 묻는 것 같만 같다.
이 그림을 만나니, 요즘 내가 읽고, 보는 것들, 느끼는 것도 포함해서 공통점이 있다. 세상은 언제나 그랬다.
허약하고 부족한 인간에 대한 차별은 인간 본연의 존엄성을 잃게 한다는 사실이다. 사랑과 연민이 사라지는 세상속에서도 작고 작은 희망이 보일 때 숨이 쉬어진다. 깊은 상처를 입은 천사가 쥐고 있는 꽃이 그 희망을 대변해준다.
삶이 두렵고 살아내기 힘든 건, 차별과 냉담과 무시와 같은 감정으로 오는 두려움이다. 그 감정으로부터 나와 내 삶만을 바라볼 때 지혜가 나온다. 오히려 자신감과 모험심이 생겨난다.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역경의 인생길일지라도 경험이다. 위험을 감수하려는 용기,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은 인생을 보다 더 찬란으로 이끈다. 차별을 견뎌 낸 인생이야말로 인생 노벨상감 같다. 위대하게 보아진가. 그만큼 보여지는 성과의 위대함보다 보이지 않는 감정으로부터 견딤, 극복해 낸 위대함으로 보았다.
다만 좀더 누군가가 곁에서 준 정의가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가 가까이에서 나 일수 있다는 사실. 작을지라도 차별받는 이를 돕고, 목소리를 내어주고, 함께 기도하고, 공감하고 위로하는 용기 말이다.
인생에 고통이 직접적으로 온 사람이 맞이할 자세가 어떤가에 따라서 인생의 방향을 선택한다. 몸을 사리고 조심성과 지나친 걱정이야 말로 한번뿐인 인생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는 억울함을 내 스스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마음가짐부터 바꾸어야 행동을 할 수 있다. 더 큰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
'다네이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6.4 다네이책읽기) 가장 파란 눈. 토니 모리슨.2 (0) | 2026.03.26 |
|---|---|
| (2026.4 다네이책읽기) 가장 파란 눈. 토니 모리슨.1 (0) | 2026.03.12 |
| (2026.3 다네이 글쓰기) 소리와 소음...탱고 음악에 맞추어 (2) | 2026.03.11 |
| (2026년상반기) 다네이 글방 (0) | 2026.02.22 |
| 다네이 방장회의 (0) | 2026.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