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두친구가 있다. 카뮈와 사르트르이다. 둘은 함께 토론하고 글을 쓰는 친구였으나 점차 좌로 가는 친구 사르뜨르에 카뮈와 이념이 달라졌다. 어느날 둘은 함께 토론을 하다가 결국엔 폭발을 하고 말았다. 각자 가치와 믿음을 토대로 이념을 선택한다. 간혹 특정의 이념에 매혹될 수도 있다. 보통은 문학과 종교 등에 의해서 이념이 생긴다. 개개인의 선택보다도 이념이 앞서게 나타날 경우도 있다.
사르트르와 냉철한 카뮈의 1952년 이념 대화는 우정을 무너뜨리게 만들었다. 프랑스를 대표한 두 실존철학자의 절교사건이었다. 철학과 정치 동료로 레지스탕스에도 있었던 우정이 서로 다른 세계관으로 달라지면서 카뮈는
“샤르뜨르 그건 폭력을 옹호하는 거잖아‘’ 라며 반대했다.
카뮈은 <반항하는 인간> 에서 소련의 폭력을 비판하였고 사르뜨르의 출판사의 편집장이 ”카뮈는 철학교과서를 다시보라“ 는 말에 마르크스 주의에 가까운 사르뜨르 역시 동조했다. 그들은 혁명과 폭력을 정당화 했다.
이에 카뮈는 인간이 이념의 도구로 전락해선 안된다며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빠졌다고 모두를 비판했다. “당신들은 굴종을 열망한다.” 라고. 이념은 철학적 토론을 넘어서서 냉전시대의 정체성 논쟁으로 번지면서 책상머리에서 혁명놀이만 한다느니, 철학도 모르면서 도덕적 이상주의에 있다느니....당시, 한국전쟁의 발발로 이념의 논쟁은 더욱 둘을 갈라놓게 만들었다. 그렇게 절교를 선언했고 각자의 삶을 삶았다. 카뮈의 왕성한 창작으로 노벨문학상도 받았다.(사르뜨르는 상도 거절한 이력이 있다.) 참 다른 두 사람이었다,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지키지 못한 헝가리 혁명에 대처한 소련을 보면서 사르뜨르는 눈을 떴다. 소련의 비판도 이어갔다. 반해서 카뮈는 지속적으로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유지하면서 ‘작가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올라타거나, 혹은 짓밟힐수 있음을 경고 했다. 짓밟히더라도 양심과 도덕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47세에 카뮈는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었고, 그후 사르뜨르는 생의 말년에 카뮈와의 단절을 후회했다고 한다.
삶에서 뭐가 더 중요할까? 이념과 개인적 우정의 균형을 성찰해 나가야 한다. 지금도 여전히...이념적 편을 만들려고 한다. 정치적인 이념, 종교... 차이와 우정은 어떻게 균형을 잡을건가? 현대사회의 물음에 풀어야 할 숙제다. 카뮈는 진정한 반항은 이념으로 우정을 적으로 삼는 것이 아닌, 갈등의 근본원인을 찾는 것. 진실은 어느 한편에만 치우쳐 있지 않다는 것부터 앎이라 했다. 이념을 넘어선 우정은 상호의 존중이다.
<토끼와 거북이> 우화의 성향과 삶...의 다름이지만 친구가 되는 것.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서로 부족함을 인정하고 넘어서는 사랑이 진정한 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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