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읽기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마르셀 푸르스트.4

angella의 노래 2025. 2. 17. 09:17

307.
그날 이후 내가 게르망트 쪽으로 산책을 갈 때면 내겐 문학적인 재능이 없다는 사실과, 그 때문에 유명한 작가가 되기를 단념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나는 예전보다 더 가슴이 아팠다.....그런 문학적인 관심에서 완전히 벗어나 아무것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되었을 즈음, 느닷없이 지붕이며 돌 위로 반사되는 햇빛이며 오솔길 향기가 나에게 어떤 특별한 기쁨을 주며 발걸음을 멈추게 했는데, 그것들은 내가 보는 것 너머로 뭔가를 숨기고 나에게 와서 붙잡으라고 초대했지만,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낼 수 없었다. 나는 숨겨진 것이 그것들 속에 있다고 생각되어 꼼짝 않고 바라 보며 숨을 들이마시고, 이미지나 향기 저편으로 내 상념과 함께 가려고 애썼다.
309.
어느 때보다 우리 산책이 길어져 오후가 저물어 갈 무렵 돌아오다가 마차를 전속력으로 몰고 가는 테르스피 의사를 만났는데 다행히도 의사는 우리를 알아 보고 마차에 태워주었다....어느 길모퉁이에서 갑자기 마르탱빌 종탑 두 개가 보였고, 그 순간 나는 다른 어느 것과도 담지 않은 특별한 기쁨을 맛보았다. 두 종탑은 석양을 받아, 우리가 탄 마차 움직임과 길 굴곡에 따라 자리를 바꾸는 듯 보였고, 비외비크 종탑이 언덕과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멀리 더 높은 고원에 있는데도 바로 그 종탑 옆에 서 있는 듯 보였다. 종탑 모양과 선의 이동, 표면에 비치는 햇살을 주목하면서, 나는 내가 받은 인상의 끝까지 이르지 못했지만 무엇인가 그 움직임 뒤에, 그 밝음 뒤에 숨어 있는 듯했으며, 종탑이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감추고 있는 듯 느껴졌다....나는 나 자신과 종탑을 생각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그러자 조금 전에 종탑을 보면서 느꼈던 기쁨이 얼마나 커졌던지, 나는 일종의 도취감에 사로잡혀 더 이상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나는 의사에게 연필과 종이를 빌려 마차가 흔들리는 데도 이런 짧은 글을 썼다.....의자 구석에서 이 글을 다 썼을 때 나는 너무도 행복해서, 이 글이 나를 종탑과 종탑 이면에 숨겨진 것들로부터 완전히 해방 시켜 준 것 같아, 마치 나 자신이 암탉이 되어 이제 막 알을 낳기라도 한 것처럼 목청껏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ㅡ글을 쓰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느꼈을 ‘난 글쓰는 재주가 없어.’ 라는 자책일 것이다. 푸르스트 같은 작가조차도 이런 생각을 했다니.... 글쓰기도 그림이나 음악처럼 창작의 결과물 이므로 자기만의 자기다운 글이 나놔야 할듯. 작가도 그런류로 헤맸을 것이다. 글쓰기는 작가가 되든 아니든지... 좋은 취미중에 취미 같다.

‘의자 구석에서 이 글을 다 썼을 때 나는 너무도 행복해서, 이 글이 나를 종탑과 종탑 이면에 숨겨진 것들로부터 완전히 해방 시켜 준 것 같아, 마치 나 자신이 암탉이 되어 이제 막 알을 낳기라도 한 것처럼 목청껏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ㅡ이런 표현.... 너무나 좋다.
10여년만에 다시 펼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는 1편이지만 읽어냈다. 그때는 나의 때가 아니었다. 뒤돌아보면 지금이 바로 나의 때, 이 책을 읽어야 할 때처럼 너무 재미가 있다. 내가 무언가 할 것, 그런데 숙제가 아닌 설렘이라면 행복한 것이지...아직 남아있는 12권이 ‘나를 찾아주렴~’하고 기다리는 듯하다. 마치 암탉이 방금 알을 낳아서 따끈따끈한 12개의 알이 말이다. 하나씩 만져보면서 아주 천천히 느껴가면서 내 일생으로 함께 갈 책으로 정했다. 한번은 완독할 수있길~ 나에게 기대하면서 ‘요놈! 잘했어.’ 라고 칭찬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