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네이 글방

(2024년12월 다네이책읽기)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1

angella의 노래 2024. 11. 14. 16:46

과거의 상처를 꺼집어 내는 것이 옳을까? 아닐까? 라는 주제로 책을 읽어 나가기로 했다. 역사적인 제주 4.3사건은 누구나 아는 만큼 진실이다. 당한 사람들과 억울하게 죽은 이들, 그리고 그 후손들과 더 나아 가서는 약자들의 두려움은 상처로 남아 있다. 우린 그 아픔에 대해서 제3자의 입장으로 균형감(여기서 말하는 균형감은 마음의 중심축의 객관화, 냉정히, 거울로 보듯이, 나의 성찰, 거리두기 해보는 것) 있게 바라 보아야 한다. 약자가 받은 큰 상처는 억울함, 분노, ㅡ 심정이다. 아픈 사람의 입장에서 귀 기울이고 상처를 함께 듣고 보듬어 안아야 한다.
나자신이 상처를 주는 사람인지? 아니면 상처를 받던 사람인가?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만약에 내가 상처를 주는 언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깊은 묵상과 회개, 그리고 스스로의 변화 후에 상처를 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한다면 최선이다. 용서 받기가 쉽진 않을지라도 성경엔 99번이라도 하라는 뜻으로 기록되어져 있다.
용서를 받아야 할 억울함, 상처가 깊을 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종교와 철학,심리학... 의 책에선 이 부분을 말하고 있다. 상처를 치유해야 그 사람이 삶을 제대로 살아 낼 수 있다. 상처는 누구나 받게 되지만 받아들임도 또한 중요하다. 미워하는 마음은 나 자신을 갉아먹는 해악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약자나 인내하는 사람들은 상처에 대해 가장 깊은 무의식에 묻어둔다. 기억에서 잊혀진 줄만 알지만 새로운 상처가 올때  무의식에 들어 있던 상처나 억울함이 순식간에 함께 올라올 때가 있다.
강물속에 가라앉아 있던 부유물이 태풍 같은 외부의 작용에 의해서 갑자기 떠오를 때 멘붕이 된다. 상처준 사람은 기억을 못해도 상처받은 사람은 결코 다 날려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상처 준 이가 용서를 청할리는 만무하다. 제3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여기서 한강이 그 역할을 한다. 한풀이 하는 무당의 역할, 종교인, 상담치료사, 작가들의 역할이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굿풀이, 기도를 해준다. 한강은 작가의 글풀이 이다. 여기서 이 한풀이는 한번에 끝낼 수 없이 깊을 수 있다면 아직 작별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그 누군가가 마음을 헤아리고 들어 주었다면 울음으로 속이 좀 풀린다면 내가 세상을 바라볼때, 살아갈 때 시각이 부정적으로 살아내는 또다른 피해는 아니 입을 것이다. 얼마간의 보상,치유,위로는 삶의 희망이고 긍정으로 가는 시작이고 세상에 대한 용서의 시작이다. 한강은 이 작업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배신당한 기분을 느낄 정도의 상처를 받은 적이 있었다. 믿는 사람에게 일수록 그 상처는 컸다. 그 자신은 말로만 상처를 주었는데 심약한 나는 큰 폭력으로 다가오면서 불안과 우울이 왔다. 이때 그 심정을 경험했거나 상담, 의사, 후엔 가족들의 관심으로 빠져 나와 있고 오히려 그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 자신이 성장하며 살아갈 날들에 담대함으로 왔다. 회복된 상처자리가 더 단단해진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된 시간이었다. 화해는 함께 하는 것이므로 할 수 없었지만, 상대방을 이젠 이해하려는 힘도 생겨 났느니 내 자신이 그만큼 성숙한 어른이 되어진 모습이 대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 자신부터 사랑하고 나를 지키는 힘, 나에 대한 연민도 생겨났다.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것. 누구도 지켜줄 수 없다.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가정도 나라도 마찬가지다. 힘은 타인을 공격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나를 지켜내기 위한 도구로서 반드시 가져야 한다.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으로는 스스로 치유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죽음의 수용소> 에서는 ... 그럼에도 살아야 할 의미를 찾아내 살아야 한다고 했고 <이방인>에서는
...하더래도 반항하듯이 잘살아내는 것이 이기는 삶, 승화라고 했다. 많은 철학자들도 자신 스스로 극복할 힘을 찾아가는 다양한 방법들을 나름대로 말한다. 심리학자는 한발 더 나아가서 상처주는 것들과의 이별 방식을 말한다. 종교 또한 위로와 공감 그리고 연민과 사랑으로 치유를 해준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안에 나자신을 알아가면서 자존감을 가지고 ... 삶이 어떠하더래도 사랑안에 있는 존재라는 말씀이 깨달아 질 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이다. 다 비우는 마음갖기, 내려놓기... 은 명상과 신앙...으로 지혜를 갖기 위한 수련이 있을 때 마음이 한결 정화가 되어지고 긍정적인 삶으로 향하여 간다.
타인을 위로 할 때에도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필요한 까닭이다. 상처는 상처받은 사람들끼리가 더욱 공감이 되어져 함께하는 마음으로 치유가 좀 더 쉬웠다.
ㅇ신경과 의사가 한 말... ”내가 우울증에 걸려봐서 아는데.“ 이 한마디에 신뢰가 가서 찾아가게 되었다.
상처, 고통을 견디고 이겨 낸 사람만이 느껴지는 특별한 희열이 있다. 내가 해냈다는 자신감이 자존감으로 극대화 된다. 인생은 살만해 라면서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세상속으로 걸어 갈 힘을 낸다. 새로운 고통과 시련이 다시 맞닥드려졌을 땐 어제와는 분명히 다른 담대함이 생겨나 있을 것이다.

엔트로피 법칙 (모든 만물은 질서에서 무질서로 흐른다.)
에서 다시 질서로 되돌아 오고 있는 시간이었다. 사랑과 연민으로...마음이 열리는 것. 회복하는 것이다. 내 안에서 긍정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 는 단순히 헤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를 넘어선 누군가에게 기억으로 이어진다는 깊은 상징성을 지닌다. 이는 과거와 현재가 단절되지 않고, 우리가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며 살아가야 함을 강조한다. 이 상징은 독자들에게 잊혀지지 않을 교훈을 남기며, 역사 속 아픔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극복해야 할 우리의 삶이 함께 있어야 한다.
한강은 한 개인의 고통에서부터 시작해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전반적으로 다루며,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닌 인간의 근본적인 고통과 슬픔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이를 통해 작가는 독자들에게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고 공감하며, 치유의 과정에 대한 성찰을 공유한다.

한강도 무척 많은 상처를 가진 작가일 것만 같다.
상처의 치유는 개인이나 한 시대의 민족이 겪은 깊은 상처지만 끝까지 물어 뜯고 가는 방식 또한 나자신에 대한 상처를 더하는 방식이다. 어떡하든지 상처가 더이상 곪지 않게 치료한 후에 그 자리부터 승화되어져 살아내야 단 한번 뿐인 내 자신에게 사랑하는 내가 주는 선물인 내 인생이 되어져야 한다. 그나마 문학인 예술로 응시하고 바라보는 방식이 가장 아픈 무거움을 가장 가벼움으로 이었다.

마지막 나의 치유 단계는
  ‘오늘도 금빛 찬란한 임진강 물이 유난히 출렁거리며 흘러간다. 언제나 강물은 흐르고 있었다. 행복한 날도 괴로운 날도 강물은 흘러 가는구나! 놓아질 때 알아졌다. 살면서 의미를 찾고 바둥대고 매달려도 떠나가게 되어 있다. 그 모든 마음을 놓아버림이 삶이었다. 행복하고 기쁜 날에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가 그 순간 반짝이는 햇살 머금은 강물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힘들고 외롭고 두려운 날, 잿빛 마음이 드는 날엔 한 발자국 멀리서 저 강물을 바라보며 부정적인 마음을 강물에 실어 보내면 된다. 강물이 흐른다. 내 마음도 따라 흐른다.’ 이다.

‘어느 한쪽이든 절대적 믿음은 타자에 대한 폭력이 된다.’ 여기서 서로가 연민으로 바라 봐야 하는 이유다.
죽어도 새로운 탄생, 부활을 ....‘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퍼덕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