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10월 다네이 책읽기) 성경여행 스케치.김혜윤.3
82
복음화란 내가 하느님 사랑을 충만히 받은 자라는 기쁜 소식의 선포를 통해 우리 자신이 ‘기쁜 소식화’ 되는 것을 말한다. 곧 나 자신의 복음화를 통해 내 삶 자체가 기쁜 소식이 되고 이를 통해 ‘내가 너에게 기쁜 사람이 되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기쁜 사람이 되어 공동체 전체가 기쁜 소식으로 ‘화’ 하고 이 사회 전체가 ‘기쁜 소식화’ 하는 것을 진정한 의미에서 ‘복음화’ 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86
카를 라너 <초월론적 신학>
그의 따르면 삶의 두려움은 더 이상 자신이 고수해 온 어떤 틀을 유지할 수 없을 때 발생한다. 자신의 능력과 한계 그로 인한 비판과 지적 그리고 절망을 마주 하게 되었을 때 인간은 극도의 내적 고통을 체험 하게 되는데, 이러한 고통이야말로 신앙 체험의 단초가 된다. 그 한계 상황에서 비로소 인간은 지금까지 자신을 형성 해왔던 좁은 세계를 넘어 또 다른 무한의 세계로 초대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적나라하게 만나고 그 존재의 근원이 되는 하느님을 만나며 이를 통해 주어진 고통의 의미를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존재의 근원이신 분의 도우심을 간절히 열망하게 되는 겸손을 체험하게 되는데 이를 ‘은총’ 이라고 한다.
ㅡ신앙적인 은총은 내 인생에서 두번의 병고 때 이루어져 있다. 30대의 아픔 때에 종교를 갖고 성경공부를 유지해 왔다. 다시 60대에 하느님안으로 영적 체험들이 두려움을 낮추어 주었다. 진정으로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이 들어 왔다.
89
복음적 완성이란 그녀의 부족함을 수용하고 인내함으로써 그녀 스스로 복음이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하는 것이었다. 내 뜻을 관철 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관철 시킴으로써 그녀나 나나 서로 복음적 유대를 맺는 것이 복음의 구현이며 완성이었던 것이다.
97
서로 담고 있는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밑바탕에는 바로 악과 죄라는 인간의 본성적 한계가 작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 도달하기 전에 내 안에 기생하는 부정적 요인이 나를 먼저 점령해 버리고 마는것인데 이렇게 죄와 악의 윤색된 시각으로 모든 사건과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을 ‘자기식 이해’ 라고 한다.
그러나 복음화는 이와 본질적으로 반대된다. 악과 원죄로 손상된 시선에 의해 내 의식이 정복당하는 것을 불허하고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을 만나 그분의 ‘시선과 의식’으로 내가 ‘되어짐’ 을 말하기 때문이다. 곧 하느님의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 볼 때 주관적 왜곡과 오해의 가능성은 붕괴 될 수 있다. ‘하느님의 지혜’ 가 내 판단을 대신 하기 때문이다.
ㅡ‘자기식 이해’ 가 자기주장, 고집이라면...
주체적인 사고는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을 만나 그분의 ’시선과 의식‘ 으로 내가 ’되어짐‘..주체적 사고는 하느님이다.
자기주장과 주체성ㅡ자기의 일방적인 주장은 고집. 타인을 휘두를 수가 있다. 주체성은 주관을 가지고 이끌어 가는 신념같은 것. 타인에 의해서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98
결론적으로 말해 복음화란 원죄로 인해 손상된 본성적 시각의 돌아섬(회개)를 의미한다. 곧 ‘자기식의 봄’ 과 ‘판단’ 에 휘둘리지 않고 ‘하느님의 시선’ 으로 사물과 사건을 보는 것을 바로 ‘복음화’ 라 하는 것이다.
ㅡ타인뿐만 아니라 내 안의 나에게도 자기주장과 주체성이 있다. 늘 하느님께 청하는 묵상과 관상이 필요한 까닭이다.
99
복음화의 결과는...구원과 해방이다.
ㅡ‘서로 사랑하라.’ 복음말씀이 죽음을 넘어서는 하느님 나라와 같은 마음, 이기주의가 이타주의가 되어질 때 진정으로 내 안에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체험이 올라와 있다. 그것은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이었다. 나의 구원과 해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