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다네이 여름 성경 신약) 마태오 1장-
마태오는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전해진다. 첫 시작이 족보이다. 예수님이 아브라함 ㅡ다윗의 후손으로 성령의 은총으로 마리아에서 잉태되고 탄생한 임마누엘 이라 불리신다. 족보안에는 죄인도 이방인도 있다. 그리스도가 이미 온 인류의 죄와 더러움을 몸소 안으심 이다. 예언은 구약 이사야(53.1-12)에 있었다. 예수님은 ‘예언자의 말이 이루어지시리다.’ 실현이다.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는 뜻이다.
* 깨달은 이와 못 깨달은 이의 차이 * 묵상
예수님의 보고 함께 자란 친지도 곁을 지킨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과 행동을 알아차리진 못했다. 오히려 배신하고 있다. 그리스도 역사 2000년이 지나도 알아차리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여기에 있다. 현대에 들어와 하느님의 침묵은 더 고요하시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임마누엘~
아브라함이 그 당시 하느님의 뜻을 따라 길을 떠나고 하느님을 온전하게 믿었다. 당시 아브라함처럼 우주만물 그 이상을 알아차림 한 이는 없었다. 그 이후에 세상의 종교나 철학이 과학으로 풀이가 되기도 하는 시대에 와 있어도 그 이상을 볼 수가 없으니 창조자 하느님은 믿음으로 출발이다. 믿음은 단순간에 생겨 날 수도 있고 차분하게 지혜를 쌓아가면서 어느 찰라에 와 있을 수 있다. 맹목적인 믿음은 진실한 믿음이 아닌 것 같다. 인간의 차원에서 믿음은 어디까지 와 있을까?
‘과학 없는 종교는 절름발이요, 종교 없는 과학은 맹인이다.’ 라고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과학이 발전하고 있는 AI 시대가 될지라도 종교는 더욱 살아남을 것 같다. 인간 내면의 고독함과 외로움의 차이를 보면 안다. 고독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풍요이다. 외로움은 홀로 견디려는 공허감이다.
코끼리 만지기처럼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내 스스로 얼마나 변화 되고 성장했나? 인간은 고쳐쓸 수 없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고 고치려는 노력은 본인 만이 깨닫고 난후에 힘든 실천의 긍정적 시간이다.
25, 그러나 아내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 어떻게 예수는 다윗 족보에 오를수 있나? 묵상
영적 족보로 이해하고 있다. 양자들도 혈연이 아닐지라도 족보에 있다. 영적 족보는 혈연을 우선하진 않는다. 족보의 계보를 보더라도 장자보다는 보다 더 영적으로 하느님께 다가간 자식으로 내려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느님께 믿음이 더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