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읽기

백석

angella의 노래 2024. 3. 10. 13:47

1936년 백석 시집이 오리지날 표지로 손바닥  크기, 2023년에 초판으로 나오다.
가방속에 넣고 다니다가 쓰윽 집어서 읽기좋아서 샀다. ‘나와 나타사와 흰 당나귀’도 있고 좋아 할 수 있는 시를 더 찾아보는 재미. 하나씩 천천히 음미해서 읽어야지.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옛 단어와 사투리등 (주석이 있지만) 으로 시도 그렇지만 시대적인 상황, 백석(1912~?) 북으로 간 시인으로 그를 이해하기가 쉽진 않다. 북에서 쓴 시도 있다면...6•25 전쟁후 북에 머물며 작품활동을 했다고 전해지나 1963년 숙청당해서 협동농장에서 사망으로 알려져 있다.하지만 1996년까지 농부로 살다가 사망했다고도 한다.
1936년에 나온 <사슴> 시집에는 33편의 시가 있는데 당시 모더니즘 영향과 지역색채, 민속적 소재로 그 만의 시세계가 있다.

<남신의주 유동 박씨봉방>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삭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게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여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내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인터넷 도움)
’시 '남신의주 유동 박씨봉방'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실의 체험과 극복의지를 담담하게 그려내어 강한 감동을 주는 시입니다.
백석의 또다른 시 '흰 바람벽이 있어'와 함께 보면 감동이 두배이기도 합니다.
두 시에서 시인이 말하는 바는 결국 같으니까요. 시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나는 아내도,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가족과도 이별한 채로 객지를 유랑하게 되었다.
내 고향을 떠나 유랑하며 많은 시련을 겪었고,
어느 목수네 집(남신의주 유동의 박씨네)에 샛방살이를 하게 되었다.
여기서 나는 혼자서 생각하며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고 슬프고 어리석은 내 삶에 대해 생각하고 반성하였다.
그럴 때면 내 가슴에 슬픔이 가득차곤 했다.
그러던 중에 나는 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고 생각했다.
나에게 오늘 시련은 내 운명이며 나를 이끄는 무언가에 의해 정해진 것이라고 이를 내가 이겨낼 수있다고....
그리고 저녁 화로 앞에서 지나온 삶을 반성하며 가끔 눈보라가 치더라도 늘 곧고 정한 갈매나무를 생각하며
나도 저렇게 되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따금씩 시련이 있더라도 늘 곧고 정한 갈매나무처럼 나도 저렇게...

이런 내용을 담담하게 산문의 형식으로 풀어서 인상깊게 풀어낸 시가 이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입니다.‘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 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
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아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
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陶淵明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