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la의 노래 2023. 12. 18. 00:40

이사악의 아들로 부귀를 누리던 야곱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다 잃고 고통받는 도망자의 신세가 된다. 형 에사오가 두려워서 지팡이 하나만을 의지한 채 도망친다. 그가 베델에서 잠을 청하였을 때 천국의 사다리를 보면서 하느님의 존재를 깊이 인식하게 된다. 이후로 야곱은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간다. 외가집에서의 설움은 더욱 그를 강인하게 만들어 가면서 하느님께 의존하는 삶으로 아들들의 이름에도 나타난다. 외삼촌의 두딸들을 아내로 맞이하고 지혜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재물을 모은 야곱은 인생의 마지막 숙제인 형 에사오와의 화해를 하고자 고향으로 떠나게 된다. 길을 가는 도중에 만난 야뽁강 물에 빠졌다가 살아난 야곱은 죽으면 끝이구나. 삶안에서는 그 무엇도 두려움이 될 수없고 남아있던 자존심마저도 다 내리는 깨달음을 얻는다. 낮고 겸손한 자세로 형을 만나 화해의 포옹을 하고 각자의 삶터에서 살아간다.
야곱의 이야기는 한 인간의 생에 대한 집념을 보여주고 점차 영적인 깨달음과 행동이 야곱을 성숙하게 만들어 간 신앙인을 만난다.

처음부터 야곱이 지혜롭고 인내심이 큰 사람은 아니었다.야곱의 지혜는 계산적이었고
미성숙한 기도는 베델에서 주님을 만났음에도 계약을 한다. ~만큼 주면 나도 잘할께. 식이었다. 하지만 야곱은 당시에 거지나 다름 없었고 친척집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매달릴 힘. 라헬이라는 사랑이 있었다.
그리고 야곱은 지독한 라반 삼촌을 견디고
견디면서 계산적인 인간의 지혜에서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 변화되어 간다. 하느님을 향한 지혜는 야곱을 성장케 하고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하며 자존심을 버리고 자존감으로 일어나게 만든다. 그가 아직도 미성숙한 인간일지라도.. 인간은 완전하게 비울 수 없는 존재니까.하느님의 은총은 여전히 공평하게 내리신다.
하느님을 몰라도.온전한 믿음이 없어도. 하느님의 은총은 쉼이 없다.
우선은 자신의 잘못부터 바라보기 시작한다.그리고 이기적이고 나만 생각하였기에 형이나 아버지 이사악의 마음을 다치게 한 것이 알아 진다. 다른 그 무엇보다도 첫 꼬인 실타래를 풀어야 만 했다 나의 탐욕과 교만을 비울 때 주님이 함께 하시고 움직이 신다. 야곱은 하느님의 뜻으로..지혜롭게 삼촌 라반집에서 나올 준비를 한다. 그리고 떠나기로 한 것이다. 서로에게 최선이라는 것을 주님으로 부터 듣다. 그 보다는 화해의 시간이 점차 다가오는 주님의 때에 들어간다. 아버지 이사악과 형과 화해하기 위하여 가는 마음에는 두가지가 든다. 형 에사오가 온 식솔을 죽일 수도 있거나. 아니거나. 야곱은 주님께 온전히 신뢰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간다. 두려움은 가까워 질수록 커져만 가고. 야뽁강에 이르러. 식솔을 다 건너 보내 놓고. 어둠속에서 앉아 있다.
하느님과의 씨름. 마음안에 온갖 천태만상의 생각이 다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인간적인 끈이 놓아지지 않는다. 이것은 자신의 생존과도 같다.이때 잡념같은 여러생각으로 가득찬 야곱. 야뽁강을 마지막으로 혼자 건너다가 어둠에 발을 헛디뎌서 빠졌다. 야뽁강의 급물살은 너무나 급해서 야곱이 죽을 수도 있었다. 집에 다 와서. 여기서 죽을 수야 없지 않은가. 밤새 어둠속에서 허우적 거리면서 살기위해 바둥거린다. 그리고 불행 중에 다행으로 야곱은 동이 트면서 잡을 거리를 잡고 살아 나온다. 얼마나 주님에게 살려 달라고 외쳤을까?
매달렸을까? 그 마음이 느껴진다. 야곱은 살아서 기어 나왔다. 그리고 처음 든 생각이 있었다. (죽으면 끝이구나.) 자존심도 뭐도.
에사오 형에게 더 낮은 자세로 겸손되이 종의 마음이 되기로 한다. 그 마음이 들자 야곱은 두려움도 사라지고 당당해진다. 마음안에 담대함이 올라왔다. 새마음으로 새 세상을 만난 기쁨같은 것. 형 에사오 역시 아버지의 이사악이 야훼이레로 살아난 신앙교육으로 성숙해 져 있었을 것이다. (화해는 어느 한쪽만으로 안된다. 양쪽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로 성숙하기에 가능하였다.) 형제는 끌어 안고 울었다. 서로에게 미안하다고. 동생이 20여년 동안 집에 그리운 부모를 못 만난 아픔을 다 알지 않는가? 모든 것의 답은 평화다. 마음에 평화가 있는 것이다.
야곱의 이야기에는 친정동생과 나와의 이야기와 닮아있는 부분이 있다. 성경을 통하여서 답을 알고 있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야곱도 에사오도 아니기 때문일까? 근본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놔버렸다.
가장 인간적인 야곱을 인간적인 눈으로 묵상하면서 썼다. 내 모습과 닮아있다. 그리고 요셉의 이야기를 읽어 가면서 내 자신이 요셉으로 까지 성숙해 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형님들을 내가 용서하기보다는 하느님의 섭리, 계획이었다. 하느님의 뜻이기에 용서가 가능했던 것이다. (50:20)

ㅡㅡㅡㅡㅡㅡㅡ
<집념의 인간 야곱>
-송봉모-

인생 처음겪는 고통스러운 시간에 야곱은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된다. 꿈을 통해 임마누엘 하느님을 만난 것이다....땅에서 하늘까지 닿는 층계와 닿는 그 층계를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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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야훼,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 아버지 이사악의 하느님이다.''(28.13)...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 이유는 야곱과의 관계에서도 그의 하느님이 되고
싶다는 뜻이다. 그동안 야곱은 개인적으로 하느님을 체험한 적이 없다....하느님이 인격적 관계를 맺고자 다가 서신다,.야곱에게 당신 자신을 주면서 그를 구원하기 위해 다가 서신 것이다...처음으로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고 영적인 눈을 갖게 되면서 그동안 움켜 잡았던 현세적 집착에서 벗어나 서서히 천상적 실재를 갈망하기 시작한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어 줄때까지 나는 네 곁을 떠나지 않으리라''(28.15)
ㅡ회심....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다다르면 반사적인 희망의 끈이 보이는 이치처럼...나의 한계점에 왔을 때 오히려 다 놓을 수밖에 없던 자기의.. 그리고 온전히 내어 맡기는 심정이 되면
하느님의 운행이 비로소 느껴진다.우리가 하느님을 알든 모르든.. 자기의로 살아내고 있다해도 하느님의 은총은 공평하게 내리고 있다. 그러한 뜻을 알고 살아가는가? 혹은 모르고 살다 가는가? 내가 비록 미성숙하여도 어디를 향하여 바라보고 살아가는가 가 중요하지 않을까? 빛인가..어둠인가... 야곱은 빛을 향하여 살아가기로 했다.
그 다짐하나로 인성이나 성향자체가 다 바뀌는 것은 아니다. 고유한 자기만의 성품이 빛으로 향하여 회심하듯. 돌아선 것이 중요한 시작이다. 인생에서는.

()
'임마누엘'의 축복이다. 하느님이 언제나 그와 함께 하신다는 것...임마누엘 축복은 일찍이 아브라함이 받았던 축복이요, 지금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께로 부터 받고 있는 복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활하신 주님께로 부터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28.20)라는 임마누엘 축복을 받았다. ...나를 돌보시는 분이 계시다는 발견보다 더 큰 발견이 있을까?...베델 사건은 은총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은총이란 지극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할 수 있는 만큼 이미 사랑하고 계심을 가리킨다.....야곱과 우리가 사랑을 받는 까닭이 그분의 무조건적 사랑 때문이다....하느님의 사랑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ㅡ은총...
하느님의 무조건적 사랑..모두에게 내리쬐는 빛처럼..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 은총을 앎과 모르고 의 차이..그리고 앎으로 찬미.감사하는 삶은 겸손해 질 밖에는 없다. 무조건적..거저받는 사랑이므로...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원의 길이 열린다.

()
‘야곱의 서원기도는 조건적이다. '하느님 당신이 이렇게 해주신다면 나도 당신을 나의 하느님으로 모시겠습니다.' 하는 식이다.’
ㅡ체험..다짐...한계..상기.. 미성숙한 야곱의 서원기도는 야곱의 지금 상태는 여기까지 믿음의 성숙이다. 하느님을 알아 본 정도만큼 성숙함으로 믿음이 생겨난다. 이것이 더 진정성 있지 않을까?처음부터 온전한 믿음이 될까? 야곱은 제단을 쌓고, 기름을 붓는 의식으로 마음속으로 깊은 다짐을 한다. 기억의 한계.지금 순간 하느님을 느끼고 회심했다고 해도 삶안에서 곧잘 잊고 일상의 세속으로 돌아간다.영적체험을 했을 때 성모님은 마음속에 새기고 곰곰히 생각하는 것 처럼..잊지 않기 위한 끊임없이 깨어 있음이 중요한까닭이다.상기 체험..꼭 묵상일기로 꿈이나 성경표시로. 일상으로의 체험을 기록을 하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잊지 않으려 한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좋은 기억. 나쁜 기억을 잊지 않아야 하는 건..좋은 기억의 상기는 감사와 지속적 관계를 갖는 것..나쁜기억도 잊지 말아야 함은 교훈같은 것.다시는 되풀이로 당하는 부족함도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다. 그 마음안에 증오나 분노를 담아서가 아니라..승화시키는 훈련으로 나자신이 성숙으로 나가야 한다

나는 야곱의 삶의 여정을 배우고 싶었다.
영악한 면이 있지만 집을 떠나 하느님을 만나고 묵묵히 자신의 고통으로 주어진 삶을 인내하며 지혜로 성장해 가고 집으로 돌아가며 자신을 어디까지 내려놔야 할지 알게 된 사람. 그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하느님께 받고 자손이 12지파의 나뉘면서 이스라엘의 선조가 될 수 밖에 없는 까닭이 가장 이스라엘 민족답게 살아 왔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곱이 왜 이스라엘 민족의 12지파의 선조로 선택 되어졌을까?
이미 어머니 배속에 있을 때 운명이 정해져 있었다. 다시 운명론이 일어나고 있다. DNA에 따라서 가정에서 유전적으로 취약한 병이 있다. 그렇더라도 병에 대해서 알고 병을 견디고 이겨낼 수 있게 살아간다면 꼭 그 병으로 고통을 안받는 것 처럼 인생도 유전같은 운명적인 취약부분이 있다면 베드로처럼 할 것인가? 유다 이스카리웃처럼 살것인가? 회개와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야곱은 엄마의 뱃속에서 이미 하느님으로 부터 받은 운명이 정해졌다. 그의 삶은 올바르든 그르든 선택하며 따라갔다. 그에겐 그에 맞는 댓가? 고통 시련의 시간이 왔고 그는 그 고통을 견디고 싸우고 이겨나가면서 성장해 갔다.

성경은 읽을 때마다 그때그때의 느낌이 다르게 올라온다. 이번 집념의 인간 야곱.을읽으면서 새롭게 알아진 신앙안에서의 야곱... 풍부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하느님의 뜻이 담겨진 분별의 지혜. 신중한 선택을 하는 삶. 하느님을 뜻을 찾는다.
영악스럽던 야곱은 자신보다 더 영악한 외삼촌 라반을 통하여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들을 보게 되었고, 아버지 이사악과 형 에사오에게 아픔을 준 자신의 잘못된 방식들을 깨달아 간다. 또한 라헬을 통한 숭고한 사랑을 앎으로 야곱자신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하여 지혜로운 선택으로 화해를 이룬다. 이기적인 방식이 아닌 서로가 다 좋아질 수있는 화해방식을 찾아서 장인 라반과 헤어지기로 결정한다. 야곱자신이 해야 할 숙제. 형 에사오로 부터 용서를 빌고,화해하려는 마음은 용기이고 평화이다. 내 자신 때문이 든, 누구인가 의해 이끌리 든. 구렁텅이 같은 어둠에 있게 될 때~ 그 속에서 내가 함께 빠져 죽는 것이 아니라
가장 최선의 방식을 찾아내는 지혜. 서로가 양보하며 모두 다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오는 지혜.각자 인생은 결국 자신의 몫이니깐. 야곱이 빠져 나올 때. 장인 라반도 나름 정신을 차리고 살아낼 듯. 구렁텅이에 있던 그 누군가도 스스로 극복하며 살아내야 하는 홀로서기가 그의 몫이다. 우선 감정부터 분별하는 지혜는 누군가 때문에 내 안에 분노를 가지고 있지도 말 것이며, 그 생각에 빠져서 시간을 소모하는 것도 분별 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신앙인으로 그 누군가 보다 더 성숙함이다. 늘 하느님이 함께해 주신 분별의 지혜는 화해로 이어진다.

()
’에사오는 야곱에게 에돔 땅 세일로 함께 가서
살자고 말하자(33.12) 야곱은 딸린 식구들
때문에 에사오의 무장된 무리들과 보조를
맞출수 없으니 천천히 뒤따라 가겠다고
말한다.(33.13-14)하지만 야곱은 자기가
했던 말과 다르게 세일로 가지 않는다....
...자기의 길로 떠난 것이다.
...화해의 속성..각자가 고유한 영역에서
자기 길을 걸어갈 때 화해는 진정으로
그 효과를 볼 수있다.
또 하나는..인생의 뿌리깊은 상처들은
무조건 받아들이고 이해해 줌으로써
봉합될 수 있다.‘
ㅡ화해...
화해하는 성숙함을 배웠다. 화해를 꼭
끄집어 내어서 용서를 하고, 받고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상호의 공존을 위한 화해
또는 새로운 불씨를 만들지 말고 딛고
넘어가는 봉합에 대하여서..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
노년의 삶...
'이 세상 떠돌기 벌써 백 삼십년이 됩니다.
얼마 되지는 않으나 살아온 나날이 궂은 일
뿐이 옵니다.'(창.47.9)
ㅡ쟁취에 가까운 야곱의 삶은 순리와 도리에
순응으로 이룬 것이 아니므로 고통으로 획득한 것이다.탄생부터...험난한 일생을 보여준다.
'인간의 욕망이 바로 그의 운명이다.'
첫 문장이다. 그 안에도 하느님은 언제나 함께
하고 계셨다. 야곱의 선택에 지켜 보시는 하느님
방식의 사랑...그 선택이 어리석어도 주님은
스스로 하느님을 향하여 성장하여 들어오길
기회를 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야곱은 하느님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 영적인 체험들을 보면..
곧, 하느님을 알아차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부족하더래도..삶안에서 하느님을
놓치지 않고, 생에도 집념을 가지고 살아내 길...

‘야곱의 구원은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에 의해
이루어 진다....옛사람의 모습은 보였지만,
하느님은 변함없이 구원의 손길을 펼치셨다.’

ㅡ하느님의 구원의 자비한 손길..은총으로
살아가는 희망적인 삶..온전한 의뢰..
야훼이레..준비하신 대로 평화로이 따라가자.
그의 마지막 죽음의 순간은 사랑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건너가고 있을 것이다.

(창31.3)
''네 조상들의 땅으로 네 친족에게 돌아가거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ㅡ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야곱에게 이제..
때가 된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라심..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야곱은 20년을 기다린 시간속으로 들어
가라신다

(창31.11-13)
꿈속에서 하느님의 천사가 '야곱아!'. ..
'여기 있습니다.'...'눈을 들어 보아라.
암컷들과 교미하고 있는 수컷들이 모두
줄처진 것. 얼룩진 것. 반점이 있는 것 뿐이다.
라반이 너에게 어떻게 하는지 내가 다 보았다.
...나는 베텔의 하느님이다. 이제 일어나서
이 땅을 떠나 네 본고장으로 돌아 가거라.'
ㅡ야곱이 얼마나 라반에게 이용을 당하고
산 삶을 증거해 보여준다. 야곱은 여한없이
뒤를 돌아볼 까닭도 없이 용기내어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마음으로 결정..그리고
행동한다는 것. 또한 어려운 선택이다.

(창32.1-2)
야곱도 길을 떠났다. 그는 도중에 하느님의
천사들과 마주쳤다. 야곱은 그들을 보고
''이곳은 하느님의 진영이구나.'' 하면서 그곳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다.
ㅡ늘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체험하다.
(창32.24-33)
야곱이 하느님과 씨름하다...'그가 동이
트려고 하니 나를 놓아다오.'..
'네 이름이 무엇이냐?'...그러자 그가 말했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내이름은 무엇때문에 물어보느냐?''하고는 그곳에서
야곱에게 복을 내려 주셨다....그곳을 프니엘이라하였다
(창35.1)
''일어나 베델로 올라가 그곳에서 살아라.
그곳에 제단을 만들어, 네가 너의 형 에사우를
피해 달아날 때 너에게 나타난 그 하느님에게
바쳐라.''
ㅡ첫 마음. 첫느낌 만큼 진실되고 진지하고
힘있는 건 없다. 그 시간이 가장 추락한 자리.
구렁텅이 였다면..더욱 더 시작의 다짐이 있었고 그 새로운 시작점에 하느님을 향하여 하느님의 손길을 알아차렸다면..이보다 소중한 체험은 없다. ~처음으로 늘 돌아가는 마음으로 산다는 것.

(창35.9-13)
하느님께서 다시 그에게 나타나 복을 내려
주셨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이름은 야곱이다.그러나 더이상
야곱이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제 너의 이름이다....하느님께서 그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전능한 하느님이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라. 너에게서
한민족이, 아니 민족들의 무리가 생겨날
것이다. 네 몸에서 임금들이 나올 것이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사악에게 준 땅을 너에게
준다. 또한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도
그 땅을 주겠다.''
(창46.1-4)
이스라엘은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을 거느리고 길을 떠났다. 그는 브에르 세바에 이르러
자기 아버지 이사악의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다. 하느님께서 밤의 환시중에 이스라엘에게 말씀 하셨다. 하느님께서''야곱아, 야곱아!'' 하고 부르시자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그가 대답 하였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말씀 하셨다. ''나는 하느님, 네 아버지의 하느님이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 하지마라.
내가 그곳에서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나도 너와 함께 이집트로 내려 가겠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서 너를 다시 데리고 올라 오겠다. 요셉의 손이 네 눈을 감겨 줄 것이다.'' 그리하여 야곱은 브에르 세바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