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눈이 떨어진다.
이마와 뺨에
입술에 인중에
차갑지 않다.
깃털 같은
가는 붓끝이 스치는 것 같은 무게 뿐이다
살갗이 얼어붙은 건가
죽은 사람의 얼굴처럼 눈에 덮이고 있나
하지만 눈꺼풀은 식지 않은 것 같다. 거기 맺히는 눈송이들만은 차갑다 선 득한 물방울로 녹아 눈시울에 스민다.
ㅡ눈으로 생사를 표현한 것 같다.
133.
물은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고 순환 하지 않나. 그렇다면 인선이 맞으며 자란 눈송이가 지금 내 얼굴에 떨어지는 눈송이가 아니란 법이 없다. 인선이 어머니가 보았다던 학교운동장의 사람들이 이어 떠올라 나는 무릎을 안고 있던 팔을 푼다. 무딘 콧날과 눈꺼풀에 쌓인 눈을 닦아낸다. 그들의 얼굴에 쌓였던 눈과 지금 내 손에 묻은 눈이 같은 것이 아니란 법이 없다.
ㅡ이런 상상에 이른다는 것은?
순환하는 물, 눈에서 우리는 태고적의 이야기도 과거 아픈 역사의 흐름도 지금 겪고 있는 고통도 다함께 순환하듯이 함께한다.
145.
그 곁에 세워진 나무들 몇이 검게 칠해져 있는 것을 본다. 어떤 느낌이 되는지 보려고 미리 안료를 입혀 본 모양이다. 조금씩 다른 농도로 칠해진 그 검은 나무들이 어떤 말을 하는 것 같다고 나는 느낀다. 먹을 칠하는 일은 깊은 잠을 익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오히려 악몽을 견디는 사람들처럼 느껴지는 걸까? 칠하지 않은 생나무들은 표정도 진동도 없는 정적에 잠겨 있는데, 이 검은 나무만이 전율을 누르고 있는 것 같다.
ㅡ인간에 대한 애도를 하기 위한 검은 나무의 장례식 준비처럼. 억울함이 묻어 나올까?
202.
찰랑이는 촛물을 심지로 빨아들이며 타오르는 불꽃을 나는 보았다. 공방 난로의 격렬하던 불꽃과 비교할 수 없이 작고 고요한 것이었다. 너울대는 불꽃 안쪽에서 파르스름 한 심부가 흔들리고 있었다. 맥이 뛰는 씨앗 같았다. 가물 거리는 주황빛 가장자리까지 고동이 번지는 것 같았다.
209.
불꽃 아래 찰랑이며 고여 있던 투명한 촛물이 한순간 넘쳐 흘렀다 삽시간에 희어지며 새로 돋친 돌기들처럼 기둥에 맺혔다.
ㅡ촛불에 대한 표현에서 느껴지는 살아내려는 안간힘이다. ‘작고 고요한...맥이 뛰는 씨앗 같았다.’ 이 표현이 특히 와 닿는다. ‘...새로 돋친 돌기들처럼 기둥에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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