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은티마을 연제식 신부님을 뵈러 가기로 했다. ‘하루 여행, 피정같은 미사’ 를 가자고 이 마리아가 몸과 마음이 들썩거리게 하였다. 이 5월이 나에겐 어쩌면 여유로운 시간의 끝일지도 모른다. 손자 이안이를 저녁시간엔 돌보게 될 것이니까.
‘’그래…가자구“
77세이신 연 신부님의 풍기는 이미지가 도인 같았다. 흰머리카락과 아무렇게나 자란 긴 흰수염, 자연스러운 주름살에서 인생의 흐름이 묻어나 있었다. 그분의 눈동자는 사랑안에서 미소가 가득하지만 신중한 예리함도 빛났다. 1990년에 목의 통증으로 사목의 어려움이 와서 가톨릭 교회 최초 귀농 신부님이 되셨다고 한다. 교회의 직분들로부터 홀가분히 떠나 4000여 평의 괴산 은티 산골자락에 통나무로 손수 만드신 작은 사제관, 작은 공소,작은 작업장겸 예술공간, 걱정을 내려 놓는 곳(해우소)까지 요목조목 포근한 안식처를 꾸미셨다. 농사도 짓고 그림과 시를 쓰고 피정 온 신자들과 미사도 하신다. 연 신부님의 공간에 들어서자 6마리의 각기 다른 품종, 유기견들이 꼬리치며 왈왈.. 반긴다. 신부님은 우리를 보자마자 반기시며 안아 주시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 하셨다. 그 댁에는 가톨릭 재단인 감곡 매괴중학교에서 국어선생님이며 수녀셨던 사촌누님과 함께 지내고 계셨다. 이 마리아와의 인연은 담임선생님이셨다고 했다. 연 선생님은 이곳저곳을 보여주시며 신부님의 살아오신 시간을 설명해 주셨다. 신부님의 방은 1인이 누울만큼의 크기였다. 온 집안은 신부님의 시와 그림 , 목공작품들로 가득하다. 작품 주제는 산이었다. 자연에 묻혀 살고 있어서인지 산만큼 좋은 게 없다고 하셨다. 산수를 배경으로 하는 진경산수화이다. 표현법이 사실적인 풍경묘사, 하지만 색채를 입힌 동양화다.
“하느님을 그리고 싶었는데 나타나지 않으셨다. 그런데 산을 보니까 모든 중생을 말없이 품어주는 하느님 모습이더라. 내게는 산이 성화인 셈이다.” 신부님은 불쑥 자작시집 한권을 주셨다. <별나라 가는 길> 시화집이다.
우리는 서둘러 작은 공소 미사방에 들어 와 앉았다. 연 신부님과 연 선생님, 그리고 이 마리아와 나는 미사를 하며 끝날 쯤에 피정같은 자기 마음을 표현 할 시간을 주셨다. 돌아가면서 깊은 마음들을 내어 놓았다. 마지막으로 신부님은 ‘노년으로 가면서 마무리는 살아 있음에 순간순간의 기쁨과 함께 하느님이 사랑하심과 늘 보호해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 이라셨다.
미사가 끝나고 식사를 접대하기 위해 신부님이 예약하신 식당으로 차를 타고 나갔다. 문경세재라는 큰문이 보였다. 다음에는 여유를 가지고 와 문경세재를 걸어 보라신다. ‘두부버섯전골’ 집이었다. 가톨릭 신자의 집이다. 간소하게 식사를 하고 다시 신부님 집으로 갔다. 사제관에서 함께 보이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신부님은 도인같은 자세로 노래를 하시는데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이신다. 연 선생님도 이 마리아도 노래를 불렀다. 모두가 노래를 잘 부르신다. 신부님은 이미 미사시간에 내가 노래 안하는 것을 아시고 신부님의 시 하나를 읽어 보라고 하셨다. 이곳의 지형이 여자의 아기보와 태의 형상이라 말씀하셨는데 분위기도 화기애애 하면서 편안하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2시를 가리킨다. 먼길 가야 하니 일찍 떠나라고 하셨다. 신부님의 시화책에 싸인을 해주시며 ‘최선의 하느님은 최선으로 이끄신다. ’ 라는 말씀도 함께 써 주셨다. 다시 포옹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우린 떠나 왔다. 오는 길에 보이는 것은 뭉게구름 가득한 파란하늘과 여름으로 들어서는 녹푸른 빛깔 산들과 쭉쭉 뻗은 고속도로다. 쌩쌩 달리며 연 신부님과 연 선생님,우리의 이야기도 나누고 ’하루 여행, 피정같은 미사‘ 로 풍성한 마음 가득히 기쁜 오늘을 감사히 안고 돌아왔다.